[리얼리티와 유니티] ④ 동원하는 통일교육, 동원되는 아이들 해마다 5월 마지막 주는 통일교육 주간이다. 통일교육에 대한 다양한 행사와 강의들이 진행된다. 학교들은 저마다 평화, 통일, 인권 관련 강의를 개설한다. 정부는 해마다 ‘통일교육 시범학교’를 모집하고 관심 있는 학교들은 통일교육 강의를 진행한다. 초중고 학생들이 강의실과 대강당에 모여들어 준비된 통일교육 강의를 듣는다. 통일교육 전문가나 교수들, 북향민들이 강연자로 나서서 통일을 해야 할 이유들과 북한의 실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목소리 높여 수군수군 대며 떠들기도 졸기도 한다. 몇몇 흥미를 보이는 아이들은 집중해서 듣고 질문도 한다. 학교들마다 비슷한 풍경이다.
국립통일교육원 통일교육주간 홍보 포스터 나는 그동안 전국의 여러 지역 학교들을 다니며 통일교육 강의를 했다. 일반학교부터 민간단체 강의, 교회 청년부, 성인대상 강연 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강연을 하면서 통일교육의 여러 문제점들을 봤다. 우선 학교 통일교육은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아서 의무가 아니다. 학교 교사들 중에서 통일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지원해서 학생들에게 통일교육을 한다.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통일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교사가 있는 학교는 학생들에게도 통일교육의 기회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학교통일교육은 학교 교사들의 재량이다. 어떤 학교들은 학생들에 대한 통일교육을 위해 교사가 신청을 해도 학교장들이 반대해서 통일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교사들이 재량껏 개설하는 통일교육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통일교육이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으니 입시위주의 교육체제 하에서 통일교육은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수능과목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도 별 관심을 갖지 못한다. 이뿐이 아니다. 교사의 재량에 따라 통일교육 강의가 열려도 강의 내용으로 문제 삼는 학부모들도 있어 교사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권에 따라 통일교육의 내용도 바뀌고 학부모들도 덩달아 통일교육 내용을 지적한다. 평화를 강조하면 좌파적이라며 교사들을 비난한다. 보수정부가 들어서면 통일교육이 인권교육으로 바뀐다. 아이들에게 북한의 비참한 실상이나 인권탄압에 대한 내용들을 위주로 전달된다. 통일교육 전문 강사가 아닌 일부 북향민들의 현장 강의의 경우 자극적인 내용도 많다.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에게 북한의 길바닥에 굶어 죽은 아이의 적나라한 사진과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지는 모르겠다. 통일교육의 내용도 나이에 맞게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통일교육에 나가면 매번 학생들에게 물어본다. 통일을 원하는지, 반대하는지 솔직하게 손들어보라고.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니 주변의 분위기에 덩달아 손들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꽤 솔직하게 손을 들었다가 내린다. 어떤 아이는 솔직하게 반대하는 이유도 말한다.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네가 생각하는 통일은 어떤 통일이야?”라고 묻는다. 아이들이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한다. 그저 남과 북이 같이 사는 것이라거나 남한의 방식대로 통일되는 것 그 정도의 답변들뿐이다. 그저 어른들이 그토록 갑론을박 하던 통일 방식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통일에 대해 물으면 아이들이 대답할법한 창의적이거나 엉뚱한 답변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아이들은 통일교육을 듣고만 있지 통일을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어디 아이들뿐인가. 어른도 매한가지다. 궁금한 것 질문을 해보라고 하면 마음이 아플 때도 있다. 어느 중학교에 통일교육 강의를 나갔었다. 강의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그 중에 질문 하나가 나더러 “지금 김정은 욕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당황스럽고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기껏 할 수 있는 질문이 이 정도라니 그동안의 학교 통일교육에 한심함이 느껴졌다. 질문을 한 학생의 잘못은 없다. 그 학생도 그렇게 보고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 풍토에서 아이들이 배운 것일 뿐이다. 내가 최고지도자를 욕할 수 없는 북한에서 와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사상적 정체성이 여전히 궁금했던 것인지 이유가 무엇이 됐던 간에 안타까운 질문이었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도 이런 얘기들이 종종 나온다. 김정은에게 “XXX”라고 욕을 해보라고, 못하면 ‘친북’이라고, ‘종북’이라고들 말이다. 저급하게 사상전향을 따지며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매도한다. 이건 질병이다. 아이들 앞에 서서 강연을 하다보면 기운이 빠질 때가 많다.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면 억지로 불려온 인상을 받는다. 사실 아이들이 원해서 통일교육 들으러 오는 게 아닌 이상 억지로 듣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이런 느낌을 받는 이유는 통일교육 자체가 학생들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통일교육에 동원되는 셈이다. 정부의 통일교육 주간에, 통일교육 시범학교에서, 할당된 통일교육 횟수를 채우기 위해서 등 다양하게 저마다의 사업의 목표를 채우기 위한 강연에 동원된다. 학생만 동원되는 것도 아니다. 북향민들 중에도 통일교육에 나가는 강사들이 있다. 나처럼 강사자격증은 없지만 초청에 의해 학교에 다니며 강의를 하는 북향민들도 있다. 통일교육이 하도 진부하니 교사들도 학생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북에서 온 북향민들을 강사로 초청한다. 교사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통일교육 강연보다 북향민들이 강연하는 강의에 학생들이 더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북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니 신기할 것이다. 북향민들은 주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탈북 이야기, 북한인권 실태 등에 대해 증언하는 방식으로 강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초중고 학생들에게 길바닥에서 굶어 죽는 북한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는가 하면, 공개처형이나 북한의 처참한 실태에 대해 아이들에게 증언을 한다.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북한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는 북향민 통일교육 강사, 안보교육 강사들의 경우 학교통일교육은 물론 군부대 안보강연 등에서 반북정서, 반공정서를 고취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군부대 강연은 성격상 그렇다손 치더라도 학교 통일교육의 경우는 교육 내용에 있어서도 상당한 수정이 필요하다. 기승전결 남한 체제가 우월하니 북한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방식으로 끝나는 통일교육은 그 내용이 맞는다고 해도 통일교육의 필요성과 취지로 볼 때 과연 적절한지 고민이 필요하다. 관심 없는 통일교육에 동원된 아이들처럼 북향민들도 북한의 실태를 증언하기 위해 동원되는 셈이다. 이게 무슨 통일교육인가. 통일교육이 아니라 통일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가 왜 통일을 해야 되는지, 통일된 나라는 어떤 나라여야 하는지, 통일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통일 이외의 대안은 무엇인지, 통일이 유일한 대안인지 등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통일이 당연한 것이니까 통일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 그 자체에 대해 교육을 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통일을 원하는지. 청년들이 말하게 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통일을 원하는지. 청년들에게 어떤 통일을 원하는지 질문하지 않는 사회에서 청년들이 통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질문이 없으니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대안도 없는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통일교육은 민족담론을 넘어 다문화적 요소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다문화사회에 접어들었다. 국내 다문화 가구원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출생아 100명 중 6명은 다문화 가정 자녀라고 한다. 2023년 현재 전국에 다문화 초등학생 비율이 10% 이상인 지자체만도 열 곳이다. 전남 함평군은 전체 789명의 초등학생 중에 162명, 20.5%가 다문화 학생이다. 경북 양양군은 20.2%가 다문화 초등학생이다. 다문화 초등학생들 앞에서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한참 어색하다. 이제 민족담론을 넘어 통일교육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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