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함’은 더 이상 김민주의 부연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룹 아이즈원 청순 대표 멤버였던 그는 첫 주연 영화 ‘청설’로 배우로서 가능성을 펼쳐 보였다. 지난 6일 개봉한 ‘청설’은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용준(홍경)과 진심을 알아가는 여름(노윤서), 두 사람을 응원하는 동생 가을(김민주)의 청량하고 설레는 순간들을 담은 이야기로, 동명의 대만 영화 리메이크작이다.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됐으며 개봉 첫 주말 누적 관객 23만 9551명을 돌파,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흥행 청신호를 켰다.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그동안 한국 로맨스 영화 편수가 적거나 작품이 있어도 배우 연령대가 높았는데, ‘청설’은 신선하면서도 연기력이 증명된 20대 배우들이 출연해 젊은 관객층에 소구하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김민주는 인기 아이돌 출신으로 흥행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기존 ‘연기돌’과는 다른 접근의 배역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고 짚었다. 로맨스 장르는 보통 두 남녀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김민주가 연기한 가을의 위치는 특별하다. 두 사람과 연애 감정보다는 성장통을 겪으며 청춘의 한 페이지를 만드는 인물이다. 극중 전도유망한 청각장애인 수영선수인 가을은 자신의 올림픽 출전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 언니 여름이 고마우면서도 어깨가 무겁다. 그러던 중 여름에게 호감을 가진 용준이 나타나면서 가을은 이 기회에 언니가 스스로의 인생을 살도록 밀어주기로 한다.김민주의 연기는 섬세하고 자연스럽다. 아이돌 출신임에도 기존 미디어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 20대 농인 역을 맡은 그는 풍부한 표정으로 수어를 사용하면서 가을을 여느 또래처럼 표현했다. 언니에게 관심을 표하는 걸 알면서도 용준에게 자기까지 꼬시는 건지 묻는 장난스러움은 초반부 소소한 웃음을 빚는다. 청인과 농인의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여주는 가을이지만 어려움에도 부딪힌다. 장애를 향한 편견 어린 시선이기도, 장애 당사자가 겪을 법한 필연적인 장벽이기도 하다. 전자에서 김민주는 구태여 상처받지 않는 가을의 단단함을 보여줬으나 후자에선 속상함에 큰 울음을 터뜨린다. 듣지 못하는 자가 큰 소리로 오열하는 모습을 설득력있게 표현해내 신선한 충격도 안긴다. 고마움과 미안함, 자괴감 같은 가을의 묵힌 감정을 쏟아내는 김민주는 단지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돌로서 모습을 지운다. 그 대신 흔들리며 성장하는 보통의 청년을 스크린에 새겼다. 연기 호흡을 맞춘 노윤서는 개봉 전 인터뷰에서 “민주가 주는 에너지가 너무 컸기에 그 신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동료로서 너무 감사했다”고 극찬했다. 지난 2018년 Mnet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48’의 그룹 아이즈원으로 데뷔한 김민주는 일찍이 연기를 경험한 멤버였다. 서바이벌 출연 전 찍은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를 비롯해 다수의 웹드라마에서 주로 학생을 연기한 그는 그룹이 활동 종료한 지난 2021년부터 배우로 본격 출발했다. 특히 드라마 ‘금혼령, 조선 혼인 금지령’에서 세자빈 역으로 사극에 도전한 김민주는 1인 2역도 소화하는 잠재력을 보여주며 2022년 MBC 연기대상 여자 신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청설’의 조선호 감독은 “아이돌의 모습만 봤는데 처음 만날 날 내가 알던 화려한 김민주가 아니라 한 소녀, 한 사람으로서의 김민주가 왔다. 그 눈빛에 캐스팅 하게 됐다”고 밝혔다. 여기에 김민주는 수개월간 맹연습한 수영과 수어를 더해 가을을 만들었다. 촬영 전 수영을 못했던 그는 선수 설정다운 수준급 실력을 뽐냈으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유창한 손짓과 표정만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자질을 증명했다.김민주는 “아이돌도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표현하며 카메라와 친한 직업이긴 했지만, 연기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카메라에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 섬세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제가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 설렘과 기대가 더 커지는 건 연기 같다”고 새 출발 소감을 전했다.김 평론가는 “연구와 연습에 노력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배역을 김민주가 진정성 있게 소화해냈다. 아이돌의 현란함과는 다른 노선의 작품에 꾸준히 도전해 나간다면 기존 인식을 벗어나 배우로서 의미 있는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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